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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88) 열녀비
  • 편집국
  • 등록 2025-05-19 14:4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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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을 다니다가  마을 입구에 세운 열녀비(烈女碑)를 본 적이 있다.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나타난 조선의 열녀는 ‘정절을 지키기 위한 죽음이나 개가 하지 않고 수절하는 것, 자식 교육이나 시부모 공양에 헌신적인 행실 등’이 포함되어 있다. 열녀상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왔지만 남편과 시부모에게 정성을 다해 봉양하는 여성이 포함되어 있다. 요양병원에서 지내다 보면 정말로 열녀비를 세워줘야 할 정도로 남편과 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여성이 종종 있다. 


김민철(57세) 씨는  엔지니어로 기계공장에서 근무했는데 2007년(39세)에 다른 공장에 파견근무를 나갔다가 기계를 들어 올리는 기중기에 우측 얼굴 부위를 부닥쳐 광대뼈 부분이 어스러지며 외상성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몇 번이나 하고 거의 2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산재보험 덕분에 이 병원, 저 병원 옮기면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사고 이후 지금까지 17년이나 사지가 마비되어 침상과 휠체어 신세를 지는데 아내 박영자(55세) 씨가 간병을 한다. 전신마비가 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남편을  휠체어에 태워 병원 밖에까지 다니며 맑은 공기를 마시게 한다. 남편은 말은 거의 못하고 입술만 조금씩 움직이는데 아내와 눈으로 겨우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아내가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이것도 자기 복이고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1년 전에는 박영자 씨의 친정어머니(83세)인 정 할머니가 치매 증세가 있어 우리 병원으로 모시고 왔다. 1층에 있는 남편을 보살피는 틈틈이 5층에 있는 어머니를 보러 다녔다. 정 할머니는 치매 외에도 이런저런 병으로 고생하시다가 결국 폐렴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는데 박영자 씨는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모친 장례 치른다고 하루 자리를 비우자 남편에게 열이 나고 호흡곤란까지 왔다. 아내가 돌아오니 증상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아내에겐 자신의 생활이란 없다. 사고로 장애자가 되어버린 남편에게 지극정성으로 간병하는 박영자 씨의 모습을 보면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하느님이 있다면 남편을 낫게 해주든지 아니면 편안히 가게 해주든지 하여 아내의 고생을 마무리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직 50대 중반 한창나이에 남편에게 기약 없는 간병 생활을 하니 곁에서 바라보는 의료진도 마음이 아프다. 열녀비라도 세울 수 있으면 나라에서 보상이라도 받아 요즘 세상에 귀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슬픔도 같이하고 기쁨도 같이하면서 정이 들고 부부애, 동지애 같은 감정으로 이처럼 헌신적으로 간병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요즘 이 집, 저 집 이혼한다는 소식을 종종 듣는다. 겨우 결혼시킨 자식들도 1년이 되지 않아 가정을 깨고 돌아오고, 늙으신 부모는 ‘황혼이혼이다, 졸혼(卒婚)이다’하며 전염병처럼 사회 분위기가 가정을 망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결혼생활을 하면 배우자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 수는 없다. 자신이 손해보고 참으며 노력해야 유지되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혼인식 때 일가친척 앞에서 힘들 때나 괴로울 때나 변함없이 상대를 사랑하겠다고 맹세한 것이 어제 일처럼 생각나지 않는가? 배우자가 잘못이 있으면 감싸주고 용서해 주고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용서하고 사는 것이 가족이고, 부부이다. 가족이 다치거나, 아프거나, 사고로 장애자가 되어도 최선을 다해 돌보고 간병해야 한다. 


박영자 씨를 보니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이 분은 진정 이 시대의 귀감이 되는 사람이고, 이 사회에 만연되어있는 혼란스러운 결혼문화에 경종을 울리는 사람이다.  



제주 애월읍 곽지해수욕장 입구에 세워진 열녀 김천덕(金天德)의 비


김천덕의 남편 곽연근은 중국에 공물을 수송하는 진상선의 책임자로 일하던 중 배가 화탈도 근처에서 침몰하였다. 모두들 남편이 죽었다고 했지만, 김천덕은 남편이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며, 매일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며 평생 수절하며 늙은 부모를 간병하였다. 조선 중기 문신 백호 임제가 이 이야기를 문집에 남겼고, 그녀를 기리는 열녀비를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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