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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산국을 찾아서 ⑤ 기장 장안의 아홉 공주가 쌓은 왕릉
  • 편집국
  • 등록 2025-05-19 14:42:01
  • 수정 2025-05-19 15: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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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 거칠산국을 찾아서 ⑤

1960년대 왕비능 사진 (사진출처 : 주영택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 소장)


장안읍 기룡리 하근마을 기룡천 건너편의 송림 속에 ‘아홉 공주릉’이라는 왕릉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울주군 웅촌면 검단리에 우시산국(于尸山國)이라는 작은 왕국이 있었는데, 신라에 정복되어 왕과 왕자는 포로가 되고, 왕비는 아홉 공주를 데리고 장안읍 하근마을로 와 산속에 숨어 살았다. 이들은 신분을 숨기고 평민으로 가장하여 품팔이를 하며 겨우 연명하면서 포로가 되어 끌려간 왕과 왕족들의 생사를 알고 싶어 날마다 화철령 고개 너머 북쪽을 살피면서 기다렸다.

어느 날 왕비가 병으로 숨을 거두자 아홉 공주는 어머니의 시신을 마당에 묻었다. 그리고 제각기 이웃 마을에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는데, 해마다 철쭉꽃이 필 무렵 달 밝은 보름날이면 그 마당에서 만났다. 아홉 공주는 왕비였던 어머니의 무덤을 왕릉답게 만들려고 매년 치마폭에 흙을 담아 와서 봉분을 쌓고 제사를 지냈다. 해마다 흙을 덧쌓은 봉분은 세월이 갈수록 큰 봉분이 되어 왕릉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후 아홉 공주가 모이던 날(음력 3월 15일)이면 아홉 공주가 살던 아홉 마을의 부녀자들도 이곳 무덤에 모여 아홉 공주의 행실을 기리며 축제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 출처 <기장군지>


왼쪽의 내용은 거칠산국과 함께 신라에 정복당한 우시산국의 스토리다. 여기에서 웅촌면 검단리의 ‘우시산국’이라 하여 우시산국의 위치는 나타나지만 거칠산국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다. 다만 화철령이 울주군 온양읍 운화리와 기장 장안면 명례리 사이의 고개라는 점을 감안할 때, 우시산국의 왕비와 아홉 공주들의 피난길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한편 신라군의 침략으로 멸망한 거칠산국과 달리 우시산국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는 의견이 많다. 그럼 우시산국의 왕비가 피신한 장안은 당시 신라와 거칠산국 중 누구의 영토였을까?


장안(長安)은 성내(城內)라는 뜻으로 잣안이 장안으로 바뀌었다. 서울을 장안이라 하는데 장안은 잣안이고 잣은 성(城)의 고어(古語)이고, 안은 안쪽 내(內)이다. 기장군 장안읍의 소재지가 되는 좌천리가 옛날의 성내이고 장안이다. 성을 뜻하는 고대어는 자, 잣, 재, 사로서 지금도 잣[성(城)]이라 한다. 


옛날에는 북쪽의 화철령(火鐵嶺)을 경계로 하여 남쪽은 거칠산국이고 북쪽은 울산의 우시산국으로서, 좌천리는 국경지대에 있는 큰 마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접경지대에 있는 명례리는 울례라 하였는데 이는 책촌(柵村)이라는 뜻의 진영이다. 현재도 부산과 울산의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다. 


(부산광역시 부산의 역사 참조)


/ 예성탁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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