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 / 전) 부산MBC 사장
1950년 6월 26일 이른 새벽, 해운대 청사포(靑沙浦) 앞바다에서는 대한민국 해군의 군함 ‘백두산함’포신(砲身)에서 굉음을 울리며 섬광(閃光)이 빛났다. 백두산함에서 발포된 포탄이 북한무장선박 갑판을 명중했다. 북한무장선박은 격침되고 타고 있던 600여 명의 괴뢰군이 순식간에 고기밥으로 수장(水葬)됐다. 백두산함 함장은 최용남 중령이었고 갑판장교는 최영섭 중위였다.
대한해협 전투 한 달 전인 1950년 5월 20일 진해 제2부에서 찍은 백두산함 승조원 기념 사진 (사진출처 = 위키백과)
김일성은 38선을 넘어 남침하는 한편 대한민국 후방지역을 교란시키기 위해 소련제 군함에 600여 명의 괴뢰군을 승선시켜 부산으로 침투명령을 내렸다. 이같은 군사정보를 입수한 우리 해군은 남하하는 북한무장선박을 포항 앞바다에서 발견, 최단거리까지 접근하여 발포 격침시키기 위해 추격했다. 드디어 부산 청사포 앞바다에서 북한무장선박이 사정권(射程圈)에 들어오자 최용남 함장이 발포명령을 내리고 명중시켰다. 갑판장교 최영섭 중위는 북한무장선박이 명중 격침되자 만세를 불렀다. 최영섭 중위는 후일 대령으로 예편하여 오늘도 그 생생한 그날의 감격과 통쾌함을 증언했다. 작고한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은 현재의 최재형 국회의원의 아버지다.
백두산함과 같은 PC-815(PC-461급 구잠함) (사진출처 = 위키백과)
백두산함은 해군의 어머니로 불리는 손원일 해군제독의 부인 홍은혜 여사를 비롯한 해군가족들이 삯바느질을 해서 돈을 만들었고 해군장병과 국민들이 모금한 돈과 이승만 대통령이 국가 예산을 보태 미국으로부터 도입한 대한민국 최초의 군함이다. 이처럼 눈물겹게 마련한 백두산함이 드디어 대한해협에서 빛나는 승전보 1호를 기록한 것이다. 이 같은 대한 해군의 쾌거를 기념하는 ‘대한해협 승전기념비’가 청사포가 아닌 부산시 중구 보수동 뒷산 중앙공원에 건립돼 있다.
해마다 6·25가 돌아오면 해군은 기념비를 참배 헌화하고 있다. 왜 청사포 앞바다 승전 기념비가 청사포가 아닌 부산 중앙공원에 세워진 것일까? 청사포는 대한민국을 지켜낸 빛나는 전적지(戰跡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