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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86) 호스피스 병동
  • 편집국
  • 등록 2025-04-09 15: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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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성산포성당에서 본 일출봉


박 할머니는 1944년생으로 올해 81세이시다. 2023년 11월 복수가 차고 숨쉬기가 힘들어 병원에 가보니 난소암 4기로 대학병원에서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10번 이상 하였다. 독한 항암치료를 계속하니 지치고 기력이 쇠진하여 더 이상 치료를 포기한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하였다. S 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려고 하니 병실이 만원이라 대기번호표를 받고 며칠간이라도 지내려고 우리 병원으로 왔다. 


“원장님, 어머니가 얼마나 사시겠습니까? 저희들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해서요.” 

할머니를 진찰해 보니 심신이 망가져 생을 포기한 상태로 오래갈 것 같지 않았다. 

“식사를 아예 못하고 링거 수액만 맞았다고 하셨지요? 수액만으로는 한 달 버티기가 힘듭니다.“ 


박 할머니는 오랫동안 투병을 하여 많이 야위었고 팔은 가늘고 손에 힘도 없었다. 간병인이 겨우 죽 반 숟갈 정도  떠먹였다. 50대의 딸이 와서 면담하였다.

“어머니가 항암치료를 힘들어하셨는데 우리 자녀들이 우겨서 1년 이상 항암치료를 받게 했습니다. 병원에서도 항암치료를 하면 6개월 이상 사는데 치료를 안 하면 한 달도 못 산다고 하셨지요.”


3차병원에서는 어떻게 하든 환자를 살리고 생명을 연장하려 하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말기 암 환자들이 일반병원의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요양병원으로 오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물었다. 

“할머니, 지금까지 사시면서 가장 기뻤던 때가 언제입니까?”


희망이 없는 병원생활에서 조금이라도 즐거운 생각을 떠올리도록 하기 위해 물어보았다. 

“기뻤던 때라고요? 첫 아들을 낳았을 때지요. 시집살이를 힘들게 했는데 아들을 낳으니 시부모님도 크게 기뻐하시고 나도 기뻤어요.” 

“기뻤던 때를 하루에 한 가지씩 이야기해주세요.” 


다음날 가보니 간병인이 말하길 어제까지 반 숟갈밖에 못 먹던 할머니가 오늘은  두 숟갈 드셨다고 한다.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날의 이야기를 하려니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기쁘고 즐거운 마음에 식욕이 생겼다고 한다. 다음날 가보니 네 숟갈이나 드셨다고 한다. 


하지만 네 숟갈이 한계였다. 위장이 워낙 약해져 소화를 못 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이야기를 하실 때는 얼굴에 화색까지 돌았다. 


며칠 후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원장님, 어머니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며 그곳에서 그냥 계시고 싶어 합니다.” 

인생에서 또 기뻤던 날은 불공을 늘 드리던 어머니가 교회에 나가 열성 신자가 되어 권사가 된 날이라고 하셨다. 

“친정어머니는 내가 믿음이 강한 사람이 되라고 이름을 신자(信子)라고 지어주셨어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이야기 주제가 살면서 힘들었을 때로 돌아간다. 


“나는 스물여덟에 결혼했는데 남편은 스물여섯 살이었지요. 우리 부모님은 양반가문에 청주에서 아주 큰 부자로 집 평수가 2백 평이 넘었어요. 나는 쌀밥만 먹고 보리밥은 먹어본 적이 없이 자랐어요. 그런데 시집을 와보니 속았어요. 남편은 게으르고 생활력이 없어 내가 인근 공장에 일하러 갔어요. 누에에서 실을 뽑아내는 잠사공장이었는데 내가 일을 야무지게 잘하여 거창으로, 경주로, 달성으로 다니며 계속 큰 공장에서 일했는데 나중엔 2백 명이 넘은 직공들의 교부장(최고관리인)을 했어요. 시누이도 내가 취업을 시켜주었지요. 사장님이 매달 한번 댁으로 나를 초청하여 식사도 시켜주고 봉투를 따로 주셨어요. 거창에 살 때인데 한번은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시누이와 함께 병원에 실려갔었지요. 마침 산소치료기가 한 대뿐이라 남편에게 누구 먼저 치료하겠느냐고 묻자, 남편이 ‘시누이 먼저 치료해 주세요’라고 하여 나는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지금까지도 머리가 어지럽고 만성두통에 시달리고 있어요.”


남편에게 받은 섭섭함이 아직도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다. 


말기 환자에게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 해도 좋은 치료가 된다. 고통 속에서 죽는 날만 기다리는 할머니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겠는가? 병을 치료할 수는 없어도 할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올 수 있도록 좋은 방법이 있는지 깊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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