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봄은 참 힘들게 더디 오신다. 입춘을 한참 지나고, 춘분까지 지나 벌써 청명 절기가 다가오는데 이제야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춘분(春分)은 24절기 중 네 번째로, 이때가 되면 태양의 중심이 하늘의 적도에 온다. 해가 떠 있는 시간과 진 시간, 즉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아지는 날이다. 이후로는 하지까지 줄곧 낮이 밤보다 길어진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절기’라고 하면 어딘가 전통의 느낌이 나는데 ‘해(태양)’를 들먹이다니. 우리 전통의 달력은 달(月)의 운행에 바탕을 둔 음력이 아닌가?
사실 소위 음력이라 통칭하는 전통 역법은 정확히 말하면, 음력과 양력을 조화롭게 섞어 놓은 ‘태음태양력’이다. 하루하루의 날짜는 달의 위상에 따라 변하는 음력으로 정하고, ‘절기’는 ‘해’의 운행에 따른 양력에 맞춘다.
우리의 달력은 왜 이리도 복잡한가? 어딘가 모르게 체계적이지 못하다 여기는 분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양력 일변도의 서구의 달력보다 훨씬 더 과학적이고, 심지어 고매한 철학적 사상 즉 ‘음양’의 조화에 기반을 둔 ‘평등사상’이 내재된 달력이다.
원래 고대로부터 동서를 막론하고 역법은 기본적으로 달의 운행에 기반을 둔 음력이었다. 매일 달라지는 달의 위상 즉, 위치에 따라 이지러졌다 차는 달의 모습을 기록하면 그 자체로 달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어원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우리가 무심코 말하는 ‘달력’은 말 그대로 ‘해력(太陽曆) ’이 아니라 ‘달력(月曆)’이다. 고대 로마의 역법도 음력이었다. 영어의 캘린더(Calendar)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로마 시대에 사제들이 매달 첫째 날 즉, 초승달이 뜨는 날을 소리 내어 발표했던 관습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음력으로 기록한 날짜로는 해마다 계절변화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로써 매년 일정한 기준을 유지하는 역법, 즉 양력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인류의 문화가 발전하면서 국가조직이 정비되고 통치권력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당연한 필요였다.
그러나 동양은 서양과 달리 끝내 음력을 버리지 않았다. 기존의 음력에 ‘절기’라는 양력 개념의 장치를 조합하여 ‘태음태양력’을 만든 것이다.
사실 서양처럼 오로지 양력만 사용하면 낮과 밤의 길이와 기온 변화에 따라 계절이 바뀌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지만, 정확한 날짜가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과거 그때는 오늘날처럼 생활 주변에 온통 달력이 차고 넘치는 때가 아니었다. 달력은 오직 지배권력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전유물이었다. 결국 달력이란 지배권력자가 국가를 운영하고 민중을 통치하는 수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에 반해 ‘태음태양력’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유용하다. 신분 고하와 상관없이 누구나 달의 모습만 보아도 날짜는 물론, 방위, 시간, 심지어 어촌에서는 고기잡이를 위한 물때까지 알 수 있다. 게다가 관에서 알려주는 태양력의 ‘절기’를 적용하면 계절에 맞추어 농사짓는 데도 문제가 없으니, 이는 민중과 지배권력자 할 것 없이 모두에게 두루 유용한 보편적 평등가치를 지닌 달력이다.
조화란 평등을 전제로 가능해진다. 동양사상의 핵심은 음양사상으로, 두 가지 상반된 요소 즉, 음과 양의 조화로운 상생작용으로 세상만물이 생성 소멸된다고 본다. 반면 서양은 서로 다른 두 요소의 대립과 갈등을 통해 세계의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인식한다. 최근 국내에 정치적 입지가 서로 다른 세력들의 갈등으로 국론이 심각하게 분열되고 있다. 조화와 상생의 지혜를 되새겨 보아야 할 때다.
정 승 욱 / 문학박사 · 대동민속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