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은 ‘상산(上山)’, 의미상 ‘하늘산’ 즉 하늘처럼 신성한 산이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의 정기가 백두대간을 따라 남으로 남으로 뻗어 내리다 동남쪽으로는 장산을 끝자락으로 발흥하였다.

대동여지도에서 우리의 산맥도를 살펴보자.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낙동정맥은 남으로 뻗어 내리다 취서산(양산 통도사 뒷산) 즈음에서 다시 동쪽으로 갈라지고, 불광산(장안사 뒷산)에 이르러 맥이 그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실상 그 맥은 불광산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동여지도는 전국도인 까닭으로 지방의 세밀한 지형과 구역은 표시하지 않고 생략했을 뿐이다. 우리 고장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해운대와 수영강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불광산 남쪽으로 더 이상 표시되지 않은 산맥을 필자가 이어서 그려보았다. 붉은색으로 표시된 산맥도가 그것이다. 그림을 보자. 불광산에서 다시 정관분지를 감돌아 내리다가, 남으로 기장 달음산에 이어지고 끝으로 장산에 이르러 백두의 영기가 발흥한다. 낙동정맥에서 갈라진 이 산맥에 이름을 붙이자면 ‘낙동지맥’이 될 것이다.
그런데 장산의 맥이 금련산과 황령산으로 또 영도 봉래산까지 이어진다는 소위 ‘금련산맥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고, <부산역사문화대전>에 그렇게 기술되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심각한 오류를 안고 있는 주장으로, 소위 ‘현실적용오류’에 해당된다. 사실 금련산맥론 그 자체는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객관적으로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적용에서 심각한 문제나 모순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등산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을 터인데 어디 한번 장산에서 시작해서 영도 봉래산까지 금련산맥을 따라 등산을 해보시라. 과연 그것을 산맥이라 할 수 있을까? 장산에서 내려와 수영강을 건너 연산동 평지를 거쳐 금련산에 올랐다가 다시 북항 쪽으로 내려와 멀리 바다 건너 영도까지. 그러나 이렇게 강으로 또 바다로 끊겨 현실과 동떨어진 금련산맥론이 일면 타당한 이유는 그것이 지질학적 산맥이기 때문이다. 지질학자들은 자연풍화와 침식으로 잘려나가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산들도 지층경사도 측정과 지질조사를 통해 지질학적으로 서로 연결된 가상의 맥을 복원해낸다.
지리는 인간의 생활방식, 문화, 정치, 경제 등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만약 금련산맥의 허리를 자른 수영강의 존재가 아예 없었다면, 혹은 수영강이 존재했으나 금련산맥의 허리를 자르지 못하고 물길이 바뀌어 백양산 동편을 끼고 흘러 바다로 들어갔다면, 지금의 우리 고장의 중심인 동래, 복천동에 유적으로 남이 있는 고대의 융성한 문화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런 비현실적인 지리개념을 배우고 있는가? 그 연원을 알고 나면 섬찟할 것이다. 한일합방을 전후로 대략 20여 종의 우리나라 관련 지리서가 식민지리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郎) 학맥을 이은 일본인들에 의해 발간되었다. 과연 그들이 한국에 애정을 가지고 한국지리를 연구했을까? 그럴 리가? 결국 그 근본 목적은 한국의 지하자원 수탈을 위한 지질조사에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태백산맥이니 차령, 노령산맥이니 하는 지질학적 산맥명이 탄생했던 것이다.
한국지리학계는 왜 아직까지 비현실적인, 더구나 식민지리학 계보의 지리개념을 대중들에게, 그리고 미래의 주역이 될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드는가? 백두산의 정기는 백두대간을 따라 낙동지맥의 끝자락 장산에 옹골차게 모여 발흥했다. 더 이상 금련산 쪽으로 흩어지지 않는다.
정 승 욱 / 문학박사 · 대동민속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