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을사년 새해가 밝았다. 벌써 2월 하순에 접어들고 있는데 웬 생뚱맞은 소린가 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상의 을사년은 이제 겨우 보름이 지났을 뿐이다. 지난달 1월 1일, 해가 바뀌면서 을사년 ‘푸른 뱀’의 상징적 의미를 되새기며 새해 분위기로 들썩였지만, 사실 서력기원의 양력에는 ‘을사년’이나 ‘갑진년’ 같은 육십갑자로 해를 표시하는 개념이 없다. 그러니 매년 새해가 되면 우리 문화와 서양문화가 비논리적으로 혼돈되는 양상이 벌어진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민간의 풍속 또한 끊임없이 변한다. 요즈음 일상에서 주로 쓰는 달력이 서력기원의 양력이니 을사년의 시작을 혼동하는 세태의 변화까지는 이해가 되나, 띠 동물 ‘뱀’의 상징성마저 서양식 상징코드 즉, 치유를 상징하는 동물로 해석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문화를 서양의 기준으로 해석하는 행태는, 그 자체로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기회에 을사년의 의미를 올바로 되새겨볼 필요가 있겠다.
우선 올해가 을사년이니, 뱀의 해인 것은 알겠는데 왜 하필 ‘푸른 뱀’이라고 할까? 육십갑자는 10개의 천간(天干)과 12개 지지(地支)의 순차적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을사(乙巳)’는 천간 ‘을(乙)’과 지지 ‘사(巳)’의 조합인데 천간 ‘을’이 동방(東方)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하늘의 기운은 동방에서 시작하여 남으로 치우쳤다가 서방으로 운행한다고 인식했다. 태양이 동(東)에서 떠서 남중했다가 서(西)로 지는 이치와 같다. 따라서 열 개의 천간 중에 ‘갑(甲)과 을(乙)’은 방위로는 동방이고 상징색은 청색. 병정(丙丁)은 남방이며 적색. 무기(戊己)는 중앙, 황색. 경신(庚辛)은 서방, 백색. 임계(壬癸)는 북방, 흑색이다. 내년은 병오년이다. 그러면? 붉은 말, 즉 힘차게 달리는 적토마가 된다.
한편 뱀은 다양한 상징성을 가진 동물이다. 징그럽게 생긴 외모와 일부 뱀이 가진 치명적인 맹독으로 인해 무섭고 부정적인 존재로만 인식될 것 같으나, 의외로 긍정적인 상징성과 함께 애니미즘적 신성(神性)을 가진 동물이다. 결정적인 이유는 그 생긴 모습에 있다. 프로이트는 세상의 모든 길쭉한 것과 우묵한 것은 인간의 성기를 상징한다 했으니 그에 꼭 맞는 형상이다. 첨단과학시대인 오늘날까지 정력보강을 위해 뱀탕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도 인간 무의식 속에 그런 관념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으로 한국 문화에서 뱀의 대표 상징성은 역시 풍요와 다산이다. 뱀이 치유를 상징하는 동물이라는 지상파 언론의 언급은 서양문화 속의 뱀의 상징성을 말한 것이다. 치유의 상징은 그리스 신화 속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에 한 마리의 뱀이 감겨 있는 상징적 표식에서 비롯되었다. 미국 육군의 의무병과에서 쓰는 표장에도 뱀이 있다. 두 마리 뱀이 휘감고 있는 날개 달린 지팡이 카두케우스는 사실 의술과 상관없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것이지만 의술과 치유의 상징으로 혼동해서 쓰이고 있다.
언론은 사라져 가는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중차대한 공적 책무를 가진다. 나라 안의 정치적 혼란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에 직면해 있는 지금, 을사년 ‘푸른 뱀’의 활기 넘치는 ‘풍요’의 기운으로 이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할 때다. 언론이 도리어 ‘푸른 뱀’의 기세를 약화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정 승 욱
/ 문학박사 · 대동민속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