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쌓인 장산 물망골 유적(?) - 사진 : 박용구 조류탐조가
흔히 우리 민족을 동이족이라 하고 신라의 뿌리가 되는 민족을 흉노족이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중국의 입장에서 다른 민족을 칭한 것일 뿐 우리까지 그렇게 칭할 이유가 없다. 동이족은 고조선을 거친 한민족이고 흉노는 훈족이다. 훈족은 만주뿐만 아니라 유럽까지 진출했는데 헝가리는 훈족의 나라라는 의미의 ‘훈가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훈족의 중국식 발음은 흉노다.
1945년경 중국 서안 지방에서 피라미드가 발견되어 학계를 떠들썩하게 한 일이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비로소 발견될 만큼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실물 사진과 더불어 비밀리에 현장을 다녀온 증언이 있어도 중국은 여전히 날조된 사실이라며 피라미드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이유는 바로 우리 민족의 유적이니까 그렇다고 보고 있다.
사진 속의 서안 피라미드들은 위로 갈수록 낮아지고 계단식 형태의 모양으로 만주와 한반도에 널려있는 고구려의 무덤과 너무나도 똑같은 모양과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건축공법을 들여쌓기 공법이라고 부르는데 중국과 일본에는 찾아볼 수 없는 고구려의 건축공법으로 알려져 있다.
고구려 유적에서 보이는 들여쌓기 공법을 장산 물망골 무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면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실제 장산 물망골에서 그런 흔적이 보이고 있다.
장산 물망골에 나타난 들여쌓기 공법의 결과물은 무엇일까? 무덤이 아니라면 집터요, 그렇지 않다면 제단일 것이다. 만일 움집의 터라면 더더욱 탐사 및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집터라면 아궁이나 기둥돌의 흔적 또는 타다 남은 곡물류나 열매라도 있을 것인데 그런 흔적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제단으로 보기도 어렵다. 제단이라면 아마도 다른 형식을 보였을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6.25 당시 군대가 주둔하면서 남긴 흔적일까? 이 역시 세월이 더 흐르기 전에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 장산 물망골 옛자취의 정체는?
우리 민족의 상고서 ‘환단고기’와 ‘부도지’에 따르면 천도의 나라에 마고성이 있었다고 한다. 마고성은 우리나라 곳곳에서 등장하는데 놀랍게도 장산에는 재건된(1924년) ‘상산마고당’이 있다. 그러나 최초의 건립시기는 알 수 없다. 장산 물망골 유적지를 그동안 수도 없이 오르내렸다. 장산국을 찾기 위한 시도는 신도시라이프 시절 ‘거석문화의 흔적 찾기(2016.1.20.~2016.6.30.)’에서부터, 지금까지 진행되는 이산표석 찾기를 거쳐 물망골의 탐방이라는 어느덧 고대 유적 탐방으로 발전하였다. 원각사 앞산 이산표석과 지대표가 있는 곳, 재건교회 평토장(봉분이 없는 무덤)과 이곳을 역삼각형으로 연결해 보면서 장산반딧불이보존동아리 김영주 회장, 옥숙표 위원장, 예성탁 감사, 정순선 총무. 손영자, 박성일 회원 및 박용구 조류탐조가, 강우동 해설사, 이현재 박사 등이 현장을 다녀왔다.
땅이 푹푹 익어대던 지난 8월 4일, 김영주 회장을 비롯한 장산반딧불이보존동아리 회원들이 현장을 또다시 찾았다. 고대유적으로 보이는 현장을 보면서 조성 시기와 실체에 대하여 각자 상상력을 동원해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다. 대화 중 고대 장산국 부족의 토속신앙 신단터라는 의견도 나왔다.
장산 물망골은 장산국의 맏아들 장자가 터를 잡은 곳이라 해서 붙여진 장자벌과 맞닿아 있다. 이끼 낀 돌단의 토성에서 부디 장산 물망골의 흔적들이 장산국과 관련된 유적이기를 바라며 마고토성 역사유적탐사대는 오늘도 비밀의 문을 두드린다.

장산 물망골에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흔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