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복통이 있고 갑자기 배가 불러 병원에 가보니 담도암 4기였습니다. 매년 건강검진을 했는데도 어찌 이렇게 급히 악화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암세포가 세포분열을 계속하여 영상검사상에 최초로 보이는 1g(직경 1cm, 세포 수는 10억 개 정도임)이 되는 데는 수년이 걸린다. 하지만 일단 1g이 되고부터는 인체에 치명적인 종양 덩어리 1kg이 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매년 검사해도 안 보이지만 한번 종양이 보이기 시작하면 암 말기까지 진행되는데 1년이 채 걸리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항암약물치료를 세 번 받더니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어 남편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명대로 살다가 수명이 다하면 죽고 싶다고 하여 본인 의사에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암 말기인지라 의사도 치료하든지 안 하든지 수명에는 큰 차이가 없을 수 있지만 본인의 의지가 강하면 기적 같은 일이 종종 생기는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그날부터 집에서 왕복 3시간 거리 안에 돌아올 수 있는 산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먹고 출발하여 산에 도착하여 이른 점심 도시락이나 산채비빔밥, 나물밥 같은 것으로 먹고 사진도 찍고 한 시간쯤 산책하다 집에 와 이른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러다 산에 가는 것도 점차 힘들어져 일주일에 서너 번 재미있게 운동하는 것을 찾다가 제가 다니던 스포츠댄스 기초반에 오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춤은 처음이라 어색해했지만 경쾌한 음악이 나오자 몸을 흔들며 시간을 보내니 기분전환도 되고 입맛도 좋아져 일주일에 세 번 꾸준히 나갔습니다.
간간이 통증이 몰려오면 진통제를 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갔습니다. 남편이 직장 생활할 때는 회식도 자주 있고 친구와 동료를 좋아해 늦게 귀가하는 것이 다반사였고 퇴직 후에도 용돈을 벌어보겠다고 여기저기 일거리를 찾아다니던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
암 진단 받고 1년 6개월은 저와 남편이 신혼생활처럼 꼭 붙어 다녔습니다. 제가 저녁을 준비하면 남편은 옆에서 야채도 씻어주고 부추전 뒤집기도 해주고 제가 만든 음식을 맛있다며 먹곤 했습니다.
40년을 같이 살았지만 평생 고맙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던 사람이 이때는 매일 몇 번씩이나 고맙다는 말을 했습니다. 위장이 약해져 먹으면 화장실에 토하기를 반복했지만 한순간 순간이 행복했습니다.
나중엔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 산에 못 가게 되었을 때 댄스교실에 갔습니다. 회원들이 춤추는 것을 한참 쳐다보곤 남편도 한두 발짝 스텝도 밟아보고 몸을 흔들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댄스 강사 선생님이 특별히 남편의 손을 잡고 파트너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기를 6개월쯤 하다가 심신이 쇠약해져 결국 호스피스 병동으로 들어갔습니다.
병원에서는 항암치료를 하지 않으면 6개월도 못 살 수 있다고 말했지만,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1년하고도 6개월을 함께 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아주 잘한 선택이었고 그 시간만큼 행복한 시간은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 1년 6개월. 남편이 그처럼 잘 웃고 매력 있는 사람인가 생각될 정도로 절 위해 주고 사랑해 주고 배려해 주어 보낼 때에는 정말 슬펐습니다. 호스피스 병동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을 함께해 주어 정말로 고맙고 감사하다고 손을 잡아줄 때는 저도 남편에게 너무 고마웠습니다. ‘당신 아직도 젊고 앞길이 창창하니 나 같은 놈보다 더 착한 남자 만나 행복하게 살아’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간 후 닷새 만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보내고 보니 부부가 중요하지, 자식은 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내 남편, 내 아내가 중요합니다. 그렇게 내 목숨처럼 아끼고 사랑하고 키운 자식들도 내가 병들어 오랫동안 죽지 않고 있으면 내 남편이나 내 아내처럼 해줄 자식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세하게 암 환자의 마지막 1년 6개월을 말하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은 암에 걸릴 수 있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자식들도 모두 떠나고 남편까지 떠나고 나니 살던 집이 너무 커서 무서움까지 생겼습니다. 그래서 한 20평짜리로 옮기려고 합니다. 원장님도 댄스를 한번 배워보세요. 댄스가 얼마나 운동이 되는지 모릅니다.”
부인이 사별의 슬픔을 극복하고 남은 시간 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빌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