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장은 양반과 백성이 차이가 크게 났다. 양반들의 육회는 후추, 깨소금, 참기름, 꿀을 섞어 파, 마늘 다짐과 잣가루를 얹어 찍어 먹었고, 생선회는 주로 겨자장이나 초장에 찍어 먹었다.
백성들은 소나 닭이나 꿩 등의 육회는 주로 기름장에 소금을 쳐서 찍어 먹었고, 생선회는 그냥 된장에 파, 마늘, 참기름을 넣고 섞어서 비비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오랜 경험으로 횟감이 어떤 종류냐, 어떤 부위냐에 따라서 기름장, 된장, 간장, 막장, 겨자장, 초장을 구분하기도 했다.
양반들이야 황금색 국화잎이나 귤을 잘게 썰어 묻혀 먹는 호사를 누렸다고 하지만, 백성들의 회는 일단 배가 불러야 했다. 그래서 무채를 썰어 무쳐 먹거나, 김치나 상추, 배추, 깻잎, 방아잎에 회, 밥, 장, 마늘, 고추를 얹어 쌈을 싸서 입이 터지게 밀어 넣어야 직성이 풀렸다.
바닷가에는 그 동네마다 집안마다 그쪽에서 회를 맛있게 먹는 고유의 방식이 고집스럽게 대대로 전해졌다. “회는 이렇게 먹어야 정석이다”가 필요가 없이, 그 회의 종류에 따라 그저 각자가 먹고 싶은 방식으로 마음 편하게 먹는 게 최고였다.
“미나리 챗국에 맛본다고 더디네더디네 더디네 오늘 점심이 더디네 삼천포라 고기잡아 회 치느라고 더디다더디네 더디네 오늘 점심이 더디네 고기반찬 쌀밥에 맛보느라고 더디네더디네 더디네 오늘 점심이 더디네”
- 경남 진주 / 모심기 소리 중에서
보통 살만 발라내는 방법을 ‘회를 뜬다’라고 표현했지만, 할무니와 어머니는 “괴기는 뼈 채로 먹어야 맛있다”라고 하시며, 생선을 비늘과 머리만 제거하고 뼈 채로 함께 써는 방법을 고수하셨다. 그래서 우리 집 가마솥 옆 부뚜막에는 막걸리 식초를 담는 초병이 두 병이나 놓여 있었고, 생선회의 양념장으로 요긴한 자연산 식초로 사철 사용했다. 양념장을 만드는 방법도 특이했다. 어머니는 큰 중발에 고추장을 퍼 담고, 마늘 다짐과 잔 파를 잔뜩 썰어 넣고 막걸리 식초를 붓고, 귀한 설탕과 참깨를 한 숟갈 넣고 휘저으면 눅진하고, 기가 막힌 초장이 완성되었다. 생선회 전용 막장도 고추장 대신에 된장과 참기름이 들어가는 것 말고는 이와 비슷하게 만들었다. 이 맛있는 소스는 지금도 내가 회를 대하며 즐기는 방법이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양념’은 생선의 비린내를 잡아주고, 간을 맞추고 신선한 맛을 더욱 돋워 주는 ‘약(藥)’과 같다고 이르는 말이다. 우리의 독특한 된장, 간장, 고추장의 장문화와 각종 향채와 향유의 조합으로 비벼낸 오래전부터 전해진 경험방의 비결이었다. 참 위대한 양념이었다. 그래서 도다리, 전어, 쥐치, 장어부터 시작해서 백합, 개발, 재첩, 새우 등 갯가에서 나는 모든 수산물이 이 소스로 회나 회무침으로 탄생했다.
이렇게 강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 살다 보니, 어렸을 적부터 민물, 바다 따지지 않고 생선이란 생선은 모조리 초장에 된장에 찍어 입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여름 방학 후에 학교에서 벌이는 ‘간디스토마 검사’에 맨날 양성반응이 나와 한 달에 세 번씩 보건소 약을 타서 먹어야 했다.
인류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끊임없이 진화 발전을 거듭했지만, 입맛은 웬만해선 쉽게 변하지 않는 보수적 욕망의 극치였다. 우리의 회 음식 문화에는 고대 선사시대부터 고기와 생선을 날것으로 먹었던 전통이 고스란히 보존된 문화원형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국악인 · 방송인 김준호 · 손심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