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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백성의 회 밴댕이
  • 편집국
  • 등록 2024-05-09 11: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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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호의 재피방 - 회 ⑨

밴댕이 회


아무리 왕이라 할지라도 기껏해야 한강 하류에서 잡은 웅어, 밴댕이, 숭어 정도가 바닷고기이고, 한강에서 잡은 가물치, 쏘가리, 잉어, 붕어가 회의 전부였다. 반면에 바닷가나 강가에 사는 백성들의 횟감은 계절에 따른 종류도 많고 그 맛 또한 임금님 수라보다 훨씬 신선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지라 계절에 따라, 지역에 따라 뚜렷하게 구분되는 갖가지 횟감이 풍부하게 잡혔다. 서해안 인근에 살았던 옥담 이응희의 시를 보면 오뉴월에 인근에서 많이 잡혔던 밴댕이를 백성들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는 시문이 있다.



밴댕이(蘇魚)


달이 단오절에 가까워지니 (月近端陽節)

어선이 바닷가에 가득하구나 (漁船滿海湄)

밴댕이가 어시장에 가득 나오니 (蘇魚塡市口)

은빛 모습이 마을 골목을 덮었다 (銀雪布村岐)

상추쌈에 먹으면 맛이 으뜸이고 (味絶包苣食)

보리밥에 먹어도 맛이 달다 (甘多麥飯時) 

농가에 이것이 없으면 (田家無此物)

생선 맛을 능히 알지 못하리 (鮮味少能知)



‘밴댕이 소갈딱지, 밴댕이 콧구멍’ 같은 말같이 밴댕이는 그물에 걸리자마자, 성질을 이기지 못해 바로 죽어버렸다. 그래서 밴댕이회는 바닷가에 가깝게 살아야만 먹을 수 있는 특미였다. 단오절이 지나면 밴댕이가 얼마나 많이 잡혔던지, 이응희가 “은빛 모습이 마을 골목을 덮었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경기 서부지역 백성들이 회를 쳐서 실컷 먹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안산에서 살았던 실학자 성호 이익(李瀷, 1681~1763)도 밴댕이를 어지간히 좋아해서, 보릿고개를 넘긴 시기에 안산 인근 포구에서 서해안서 잡힌 밴댕이 한 소쿠리 얻어와 그 기쁨을 시로 썼다.



몇 줌 곡식 경작하여 배고픔 벗어나고 (甁粟經營免苦饑) 

채마 밭에 채소 많아 내 몸을 살찌우네 (田蔬多味助身肥) 

듣자니 포구에 고깃배가 왔다 하니 (傳聞浦口漁肌入) 

다시 밴댕이 한 소쿠리 얻어 돌아오세 (又貰藤魚一箸歸)



한편 한낱 밴댕이가 한양 도성과 가깝다는 이유로 왕부터 백성까지 사랑받았다면, 도성과 떨어진 바닷가 촌락 백성들의 밥상은 지역마다 계절마다 인근에서 잡히는 신선한 생선으로 수라상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서해안에는 밴댕이를 비롯한 우럭, 조기, 간재미, 박대가 있었고, 서남해에는 날것으로도 먹고 삭혀서도 회로 먹는 홍어가 있었고, 여름 보약인 민어, 짱뚱어, 병어가 있었다. 제주에는 자리돔, 한치, 소라회를 많이 먹었고, 남해안에는 볼락, 놀래미, 쥐치, 전어, 숭어, 전갱이, 대구, 서대, 붕장어 삼치가 있었고, 남동해안에는 멸치, 갈치, 술뱅이가 많이 잡혔다. 동해안에는 도치, 오징어, 가자미, 꽁치, 명태, 개복치, 문어, 상어가 있었고, 청어를 반건조시켜 먹는 과메기라는 독특한 회 문화가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 인근의 바다 아무 데서나 볼락, 놀래미, 꽁치, 학꽁치, 고등어 등이 많이 잡혀 이런 것들을 뭉뚱그려 썬 것을 그냥 ‘막썰어 회’ 또는 ‘잡어회’라고 부르며 그 맛을 즐겼다. 심지어 갈치나 멸치도 갓 잡은 것은 회로 해 먹을 정도로 바다 생물 모두가 횟감인 셈이었다. 


원래 정석의 생선회는 가시와 껍질을 발라내고 살만 작게 썰어서 만든다. 하지만 바닷가 백성들은 그게 정석이 아니었다. 공자의 방식대로 잘게 썰면 욕을 얻어먹기에 십상이었다. 만약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면 일본식 선어회를 더 좋아하지 싶다. 

 

 

국악인 · 방송인 김준호 ·  손심심 

 


덧붙이는 글

재피방은 ‘조그마한 방’이란 뜻의 순우리말로 국악인 김준호, 손심심 부부가 운영하는 블로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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