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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제를 지내던 입암(선바위, 장군바위)
  • 편집국
  • 등록 2025-12-23 16:39:59
  • 수정 2025-12-23 16:4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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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Story - 장산의 희귀한 바위 ①

높이 11m, 둘레 12m인 입암(선바위, 장군바위)                         ▲투구를 쓴 장군의 얼굴 - 장산국의 김해김씨 장군(?)

조선시대 동하면 주민들이 기우제를 지낸 곳이 재송동 선바위[立巖]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임신년(壬申年, 1752년) 가뭄이 들었을 때 재소(齎所)에서 분란이 일어나 관가에 고하여 지침을 받기를 입암 기우제는 재송동이, 해운대 기우제는 하4동이 담당했다’는 기록이 기축년(己丑年, 1769년)에 작성된 고문서에 나타나 있다. 


그러면 1752년까지는 좌·중·우동 및 재송동에서 함께 선바위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당시 선조들이 제물을 진 채 짚신을 신고 오르던 선바위를 찾았다. 


코스는 성불사까지 차로 이동한 후 성불사 주차장에서 임도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임도를 따라 100여 미터쯤 오르면 전망대가 나타난다. 하필 이날은 미세먼지가 가득해 조망은 포기하고 다시 400여 미터를 더 올라가 정자를 만나면서부터 비포장도로가 시작된다. 이 지점에서 오른편 산 쪽으로 나 있는 등산로를 타고 오른다. 입구에 ‘장산 정상’이란 이정표가 있지만 아쉽게도 입암이나 장군바위, 선바위 등의 표식은 없다. 


“등산로를 따라 계속 직진하라”고 등산객들이 알려주었건만 이정표 없이 갈라진 길을 만나자 다시 길을 물었다. 그러자 위로 올라가면 길이 합쳐진다고 한다. 다시 고행길의 시작이다. 오르고 올라도 계속 급한 오르막길만 계속된다. 

 


몸이 천근만근이라 서 있을 힘조차 없어 더 이상 오르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 즈음에 앞쪽에 큰 바위가 보였다. 근데 선바위라 하기에는 높이가 낮아 이내 실망하고 주저앉으려는데, 바로 위로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바위 아래 제단과 돗자리 한 장 펼 공간까지 마련돼 있는 모양이 분명 기도처가 확실해 보였다. 고개를 돌리니 앞에 안내판까지 서 있다. ‘아! 여기가 입암, 선바위요 장군바위구나’ 하면서 바위를 올려다보니 그 위상에 감탄만 나왔다. 급충전된 다리로 바위 주변을 둘러본다. 바위 뒤편에서 올려다보니 투구를 쓴 영락없는 장군 얼굴이다. 이 장군은 누구일까? 혹시 김해 가락국에서 건너온 김 장군이 아닐까?


그런데 도대체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이곳까지 올라와 기우제를 지냈을까? 등산화를 신고 가벼운 배낭 차림으로 임도를 오르는 데도 약 1시간이나 걸렸다. 그러면 아랫동네에서 출발해 이곳까지 오르려면 최소한 1시간 20분 이상은 등반을 해야 가능하다.


가뭄으로 작물들이 눈앞에서 타들어 갈 즈음에 선바위를 향한 선조들의 발걸음은 어떠했을까?. 그저 비가 빨리 내려 처자식이 굶지 않길 바라는 일념 하나로 짚신에 불이 났을지도 모른다.


/ 예성탁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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