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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의 마고당(麻姑堂) 이야기 - 2
  • 편집국
  • 등록 2025-09-11 15: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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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운대의 진산(鎭山) 장산 이야기 ❻

사진_ <장산국 속으로> 전자책


“옛날 고씨(高氏)들이 장산 기슭에 있는 장자벌에서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하늘에서 선인(仙人)이 무지개를 타고 이 마을에 내려왔다. 선인은 아름다운 고선옥(高仙玉)의 모습에 매혹되어 선옥과 혼인하였다. 이들 사이에서 아들딸 각각 10명이 태어났는데, 장성하여서는 모두 20곳의 마을에 흩어져 살았다. 선인은 대족장이 되어 그 씨족들을 다스리다가, 회혼(回婚) 때가 되자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때부터 고선옥이 고씨족을 다스리게 되었지만, 선옥은 선인이 그리워 날마다 옥황상제께 선인의 하강을 열심히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옥은 선인을 기다리다 지쳐서 숨졌다.”


이 설화가 수록된 자료집은 <기장군지(2001)>·<부산의 당제(2005)>·<천년의 향기, 해운이야기(2011)>등이다. 모두 채록일시·채록자명은 밝히지 않았으나, <부산의 당제>에는 이 설화가 재송2동의 당제 유래설화로 명확히 분류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 설화가 건국신화의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은 학계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북방에서 남하한 도래(渡來)인을 하늘에서 내려온 선인으로, 이미 이 땅에 살고 있던 정주(定住)인을 고씨족으로 상징화한 서사 구도는 전형적인 건국신화의 형식이니, 이는 다름 아닌 장산국의 건국신화인 셈이다. 신화, 특히 건국신화는 구비역사물이다. 문자가 없던 시절 한 문화집단의 내력을 이야기 형식으로 전승해가는 것이 고대인들의 역사전승 방식으로, 오늘날 무속의 신본풀이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니 장산국 신화를 단순한 옛날이야기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한편 신화 속, 장산 기슭에 살던 사람들은 고씨이며 고씨할미 이름이 하필 선옥(仙玉)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씨 ‘고(高)’와 마고할미의 ‘고(姑)’는 동일한 음이며, 선옥의 ‘선’은 ‘신선 선(仙)’이니 이는 분명 의도적 설정으로 짐작된다. 즉, 고씨족의 지도자 고선옥을 마고(麻姑)할미에 의탁하여 신성화했다는 말이다. 전통시대의 마을 신당에 배향하는 입향조(入鄕祖)를 신성화하는 사례와 동일한 논리다.


그럼에도 중요한 점은 고선옥을 신성화하는 과정에서 정작 마고할미의 신성은 훼손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정산 고당할미처럼, 외래종교의 권위적 외압에 의해 할미의 신성이 훼손된 경우와 사뭇 다르다. 즉 불가에 귀의해 있던 밀양 박씨 할미가 임진왜란 때 불에 탄 범어사를 재건하는 데 힘쓴 공덕으로 고모당에 좌정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속에는, 우리 고유의 창세신이 불가의 일개 신도 정도로 그 신성이 왜곡되고 만 슬픈 사연이 담겨있다.


지금 장산 마고할미의 창조신으로서 구체적 신이담(神異談)이 전해오는 것은 없다. 그러나 마고신은 우리의 가슴 속에, 무의식 속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민속은 살아 숨쉬는 유기체처럼 세태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때로는 자연스럽게 변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권위적인 외압에 의해 왜곡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신앙이나 사상과 관련된 민속은 잘 변하지 않는다. 인간의 생존본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산 마고당처럼 마고신앙의 원형이 잘 보존된 경우는 전국적으로 희귀한 사례이다. 마고할미가 그 숱한 역사의 질곡 속에서도 꿋꿋이 그 신성을 지켜왔으니, 그 경이로운 생명력은 곧 민중의 힘이다. 장산 마고당은 앞으로도 잘 보존해야 할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정승욱 / 문학박사 · 대동민속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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