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전시실에 들어서니 무슨 관람객이 이리도 많은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부산박물관과는 너무 대조적이라 어리둥절하다가 되도록 인파가 몰리지 않는 쪽의 유물을 먼저 보기로 했다. 인파도 인파지만 유물들 역시 공간에 비해 너무 많이 배치해 놓은 것 같았다.
땅속에 그리 오래 있었던 유물이면 이젠 밖에서 널찍하게 휴식을 취할 자격이 충분해 보이는데도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좁은 공간을 독차지하고 있는 유물 중에 ‘토우장식 항아리’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토우장식 장경호(계림로 30호 무덤 출토 목항아리로 높이 34㎝, 구연부 지름 22.4㎝)’가 정식 명칭인데 ‘흙으로 만든 인형으로 장식된 목이 긴 항아리(목항아리)’이다.
토우는 장난감이나 애완용으로 만들거나 주술적 의미로, 또는 무덤에 넣기 위한 부장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흙뿐만 아니라 동물의 뼈나 뿔, 나무 또는 짚이나 풀로도 만들기도 하지만 대다수가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토우라 지칭한다.
토우장식 항아리의 어깨와 목 부위에는 5㎝ 정도의 작은 토우들이 붙어 있다. 항아리 목과 어깨에 걸쳐 임신한 여인이 신라금(가야금과 유사)을 뜯고 있는 모습, 개구리를 물고 있는 뱀이 신라금 아래를 지나고 있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또 항아리의 어깨 부분에는 성행위 중인지 아니면 준비 중인지 애매한 남녀, 활짝 날개를 벌린 새, 개구리를 물고 있는 뱀·새·자라 등이 붙어 있고, 목 부분에는 새와 물고기, 개구리를 쫓는 듯한 뱀의 모습, 머리가 떨어져 나간 남자상 등이 붙어 있다.
이런 다양한 토우장식은 5~6세기의 신라인들의 생활상과 신앙 등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성행위를 나타내는 토우는 상당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엉덩이를 깐 채 엎드린 여인과 고개를 위로 살짝 올린 채 뒤쪽을 바라보려는 듯한 그녀의 얼굴에서 묘한 관능미가 물씬 풍긴다. 그에 비해 남성의 성기는 지나치게 과장된 모양인데 거의 같은 토우의 다리 크기 정도다. 이는 당시 신라에 널리 퍼진 다산의 심벌인 남근을 나타낸다고 한다.
여태 여러 박물관을 다녀도 이렇게 관능미 넘치는 유물은 보지 못했다. 이런 생산적인 토우들을 잘 보이게 확대해서 본 지에 내보내면 사회적 파장이 어떨지…. 그러나 항아리에 붙은 작은 토우들은 신라인들의 성에 대한 자유분방함과 솔직한 감성을 마구 토하고 있었다.
/ 예성탁 발행인